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죄가 될 수도 있는 시대. 엇갈린 삶을 사는 가하, 유현, 그리고 휘량. 그들의 운명에 비가 내린다.
19금 공포 소설에 빙의했다!
성안에서 모두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을거라 여겼던 신데렐라. 그러나 그런 동화속의 주인공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너 하룻밤 새에 많이 달라진 것 같구나? / 선배가 그랬잖아요. 당당해지라고
동생에게 애인을 빼앗긴 절망적인 그날 밤, 유리엘은 전쟁영웅이자 서쪽의 대공 아크룬에게 안기는 꿈을 꾼다.
그녀는 그에게 사랑과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싶었다.
개가 좋은 거야? 내가 좋은 거야?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내 원수는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희한할 만큼 이상한 놈만 굳이 골라 사귀는,그래서 붙은 별명이 연애추노꾼인 그녀, 한나.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가족이 몰살당한 그녀의 사랑은?
수수께끼 풀기
글작가 / 최은영

수수께끼 풀기-최은영

로맨스소설 > 현대로맨스
피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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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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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최은영 님의 장편로맨스. 2003년 종이책으로 출간된 작품입니다. 이준에게, 아무리 밟아도 꿋꿋이 일어나는 지연이, 지연에게, 자신의 인생을 채 가버린 이준이, 서로가 서로에게 수수께끼가 되어버린 두 사람. 수수께끼를 풀고나면, 두 사람은 행복해질까? <작가소개> 최은영 종이책 출간작 -수수께기풀기, 플러스, 오래된 거짓말, 늑대날다 <작품소개> 2003년 종이책으로 출간된 작품으로, \"수수께끼 풀기\" - \"플러스 1,2\" - \"플러스 그 후\" 로 이어지는 시리즈 물 입니다. 지루한 일상 속에서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것도 잠시, 거칠 것 없는 이준에게, 아무리 밟아도 꿋꿋이 일어나는 지연은 그야말로 수수께끼였다.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억지로 자신의 옆에 묶어버렸다. 성실하고 바르게 살면서 작은 행복만을 꿈꾸는 지연에게, 자신의 인생을 채 가버린 이준의 한마디 한마디 또한, 수수께끼였다. 자신에게 던져진 수수께끼를 아무래도 풀 수가 없었다. 수수께끼를 풀고나면, 두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본문 중에서 지극히 평범한 날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적당히 지루하고 적당히 바쁘기도 한, 지구 온난화 현상에 의해 일찍부터 더워지기 시작한 6월의 어느 한가로운 오후였다. “까르르르.” “푸하하하하.” 카페 중간에 자리 잡은 원형 테이블에서 다시 한 번 고음의 웃음소리가 와르르 터져 나오자 지연은 굽혔던 허리를 쭈욱 폈다. 싱크대를 힘주어 닦느라 오래 구부렸던 허리를 누르는 묵직한 통증에 주먹을 쥐어 허리를 퉁퉁 쳐보았다. 점심시간이 지나 들어온 아줌마 일행들은 무슨 음담패설이라도 나누는지 큰 웃음소리를 연신 터뜨리며 나른한 오후의 카페 안을 활기로 가득 채웠다. 깨끗해진 주방을 점검하듯 꼼꼼히 살펴본 후 만족함이 가득한 미소를 짓고 카운터로 나가 의자에 앉은 지연은 탁자 밑에 챙겨두었던 가방을 열어 영문으로 된 전공 서적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오후의 식곤증이 몰려와 하품이 몇 번이고 비집고 나온다. 지루한 오후는 나른하기만 하다. 가게 안은 지나치게 한산했다. 학교 주변이긴 하지만 대로가 아니라 뒷골목에 위치한 카페에 멋진 실내장식 인테리어가 준비된 것도 아닌, 너무나 평범한 그저 그런 카페였다. 특별히 독특한 개성을 찾자면 한량 같은 사장이 오랫동안 고심해서 지은 [돌은 움직이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쓰고 있을까?]란 철학적인 간판이 다였다. 게다가 어정쩡한 오후 시간이라 가게 안은 한가했다. 계 모임을 끝낸 아줌마 다섯이 요란스런 수다를 떨고 있고 창가 쪽에는 십 분 전쯤 가게로 들어온 긴 생머리에 그야말로 청순가련한 여성이 조용하게 앉아서 메모를 끼적거리고 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그런 한가로움이 묻어난다. 창을 통해 초여름의 햇살이 가득 가게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테이블에 엎드려 한숨만 자고 일어나면 좋을 그런 게으름이 지연의 눈동자에서 떨어져 내린다. 요즘에 바둑의 재미에 푹 빠진 사장은 같은 건물 4층의 기원(棋院)으로 일찌감치 사라져버리고, 지연 혼자 나른함과 지루함과 들뜬 수다를 견디고 있었다. “으갸갸갸갸갸.” 길게 기지개를 쭈욱 켜자 졸음은 잠깐 물러갔다. 책으로 시선을 돌려 몇 문장 내려갈 즈음에 가게 문에 달린 종소리가 딸랑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낸다. 지겨움을 몰아내는 산뜻한 소리였다. 갑자기 가게 안의 모든 소음이 정지했다. 종소리만 들으면 긴장감을 끌어 모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는 지연도. 수다를 떨던 아줌마들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청순가련한 여자의 시선도 한꺼번에 출입문을 향해 쏟아졌다. 지루함은 증발해버리고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동자들이 빛을 낸다. “어서 오…….” 뒷말들은 목 안에 걸려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습관처럼 반쯤 엉덩이를 일으켜 세우던 지연의 입이 놀란 듯이 반 치가 뚝 떨어졌다. 마치 바보처럼 놀라움과 생경한 모습에 시선을 빼앗겨버렸다. 생전 처음 서울역에 내려선 시골 촌놈처럼 남자의 전신을 꼼꼼히 살피는 지연은 시선의 각도에 따라 고개까지 저절로 크게 움직였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환한 보라색 머리칼이었다. 햇빛에 반사한 그 빛깔은 눈이 시리도록 고왔다. 어깨선에서 출렁거리는 그 머리칼은 대담하고 자유분방하다. 그 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남자의 눈을 가리고 있는 오만한 선글라스였다. 훤칠하게 큰 키에 신경질적으로 보일 만큼 날이 선 턱 선과 꾹 다문 입술.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작은 은빛 링 귀걸이. 목에 걸려 있는 굵은 체인의 은빛 목걸이. 남자였다. 화려한 치장을 한 새로운 손님은 놀랍게도 남자였다. 지나치게 당당하고, 압도적으로 보일 만큼 오만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은 남자다운 잘생김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이 고운 화려함. 잘 꾸며진 모델처럼 날이 잘 선 콧날은 남자의 머리칼과 잘 어울려 화려해 보였다. 그리고 별나게 하얀 피부가 어딘지 모르게 낯선 이국의 냄새를 풍기는 것도 같았다. 게다가 옷차림조차도 평범함을 거부한 자유분방함이 흘러넘치는 파격적인 차림이었다. 때 이르다 싶은 무릎 위까지 오는 헐렁한 연한 베이지색 반바지에 윗몸에 거의 들러붙은 검은 기하학적 무늬가 그려진 검은색 티셔츠. 바지 주머니 한쪽에 손을 집어넣고 당당하게 걸음을 옮기는 그는 보통 사람의 상식을 거부한 그런 차림새였다. “킥!” 지연은 재빨리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지만 웃음소리가 반쯤 흘러나오고 말았다. 남자의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맨살 아래 숭숭 솟은 다리털과, 슬리퍼 모양의 샌들 위로 드러난 길쭉한 엄지발가락이 묘하게 웃겼다. 남자가 신은 샌들 자체도 우스웠지만 그 엄지발가락이 더욱 우스워 지연은 자꾸만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애를 써야만 했다. 아주 짧은 순간 남자의 시선이 어깨를 움츠리고 입을 막고 있는 지연의 모습을 훑고 지나갔다. 창가 자리에서 혼자 낙서를 끼적이던 청순한 여학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온 얼굴 가득 미소를 화사하게 담아낸다. ‘애인이었군.’ 여자의 모습과 정반대 차림인 남자의 불균형한 모습에 또다시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하긴 남자들의 이기심이란 자기 여자만은 순결하기를 바라는 아이러니를 갖고 있으니까. 표정 없는 얼굴로 여자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딱딱한 싸구려 소파 등받이에 한 팔을 자유롭게 올려놓은 무례하면서도 한껏 게으른 자세였다. 이상하게도 남자는 시선을 뗄 수 없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마주 앉은 여자의 화사한 웃음을 보고서야 지연은 정신을 차리고 이제껏 벌어져 있던 입을 야무지게 다물었다. 카페 안의 나른한 공기는 순식간에 팽창된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지연은 정신을 차리기라도 하려는 듯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뽀득거리게 닦아놓은 물 잔을 꺼내 시원한 생수를 담아내고, 쟁반과 함께 메뉴 판을 익숙하게 함께 집었다. 주방에서 몇 걸음 나섰을 때, 또다시 오래된 구리종이 딸랑 하며 명쾌한 소리를 냈다. 이번엔 입이 아니라 지연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새로 들어온 남자의 모습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단정하게 깎인 머리와 훤칠한 키와 외모. 그리고 굵직굵직하게 선이 굵은 이목구비가 남자다운 박력이 넘친다. 그러나 앞의 남자의 태도나 차림이 워낙 독특해서 그런지 새로 등장한 남자는 아줌마들로부터 확실한 시선을 잡아끌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두 남자는 확실히 눈에 띄었다. ‘호오, 오늘은 눈 보시하는 날인가보네.’ 지연은 기분 좋게 몰래 웃었다. 크게 숨을 고르고는 먼저 앉은 남자의 자리로 주문을 받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시원한 생수를 가득 담은 물 잔엔 벌써 투명한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벌써 2년째 하는 일이지만 늘 약간의 긴장감이 따른다. 물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들 자리로 가까이 가자 난데없이 날카로운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키스도 했잖아요?” 당황스러움이 지연의 걸음을 주춤거리게 했다. 늘 조용하기만 하던 카페인지라 이 정도면 큰 사고였다. 한 걸음 더 내딛기 전에 지연은 재빨리 생각을 했다. 지금은 물러났다가 나중에 다시 주문 받으러 온다, 아니면 저 분위기에 끼어든다, 두 가지 생각이 분주하게 갈등했다. “그래서?” 한껏 게으른 자세와는 반대로 차갑게 얼어붙은 남자의 목소리. 옆에서 듣기만 하는 지연에게도 찬 기운에 팔 위로 오소소 소름을 달리게 한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얼음장 같은 남자. 카페 안에 난데없이 즉흥극이 열렸다. 관객은 지연과 진즉부터 자신들의 수다에 지쳐 지루함에 몸부림치던 아줌마들. 주연은 비련의 여주인공을 맡은 청순가련형 여자. 그리고 화려함과 오만함으로 치장한 남자. “나한테 이럴 수는 없어요.” 분한 듯 소리치는 여자의 목소리가 조용한 카페 안을 가득 채웠다. ‘여기서 물러가야 해.’ 지연의 머릿속에서 작은 소리가 외쳤다. 그러나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에 홀리기라도 한 듯 저도 모르게 테이블 앞으로 한 발짝 다가갔다. 입술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완벽한 메이크업을 자랑하는 여자의 얼굴이 지연의 시야로 들어왔다. 두꺼운 파운데이션이 얼굴을 가면처럼 뒤덮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기라도 할 것 같아 순간 지연은 자신의 얼굴이 답답해져 쟁반을 받치고 있던 왼손을 슬며시 빼어 뺨을 벅벅 긁었다. “흠, 흠.” 작은 인기척을 내며 테이블 위로 물 잔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그러나 눈앞의 두 사람은 지연의 존재에 전혀 관심도 없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예의로 자신들의 얘기를 잠시 멈추고 다가온 사람에게 적어도 아는 체라도 할 터인데, 두 사람은 지연의 등장 따윈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듯 아랑곳 않는다. 의도하지 않은 관객의 자리가 적잖이 귀찮아서 재빨리 물러나고 싶었다. ‘빨리 주문이나 할 것이지. 이 사람들 영화 찍는 줄 아나?’ 투덜거림이 입 안에서 뱅뱅 돌았다. 지연은 조급한 듯 발바닥으로 바닥을 통통거렸다. 귀머거리인 듯, 장님인 듯 쟁반을 들고 다소곳이 서 있는 체하고 있지만 실상은 난감했다. “책임져 주세요!” 당돌한 듯 여자의 요구가 터져 나왔다. 왜 이런 싸구려 얘기를 듣고 서 있어야 하는지 갑자기 짜증이 울컥 치밀었다. 안간힘을 다하는 여자가 안쓰러워 지연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남자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여전히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남자의 입매는 냉정하기만 하다. 알 만하다는 조소가 지연의 얼굴 위로 재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하필이면 이런 장면을 보게 되다니…….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여자의 말꼬리에 지연이 빠르게 끼어들었다. 이런 치정극 따윈 보고 싶지 않다. 아무리 지루하고 한가로운 오후라고 할지라도. 등을 돌리는 지연의 팔을 무언가 강한 힘이 잡아당겼다. 팔이 당겨진다고 느낀 순간 능숙하게 허리를 감아오는 뱀처럼 유연하고 차가운 느낌. 갑자기 지연의 입 속으로 물컹한 이물질이 쑤욱 미끄러져 들어왔다. 높은 벼랑에서 등을 떠밀리기라도 한 것 같은 충격과 비명이 지연의 목 안을 흔들었다. 뭐, 뭐야? 동그랗게 놀란 눈이 허공을 허우적거리며 필사적으로 구명줄이라도 잡으려는 듯 애를 쓴다. 당황함에 이성이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미처 파악도 하기도 전에 지연의 입 속으로 들어왔던 이물질이 불쑥 빠져나갔다. 갑작스런 충격에 심장은 벌렁거리며 미치도록 펌프질을 해댔다. 지연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가슴에 올리고 가쁜 숨을 조절하려고 애를 써 보지만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키스라고?” 방금 전까지 여자 앞에 앉아 있던 남자의 조소가 지연의 머리 위에 쏟아져 내렸다. 허옇게 질린 지연만큼 놀란 얼굴을 한 여자를 향해 탁자 위로 사진 몇 장이 후드득 던져진다. 사진 몇 장이 적나라하게 지연의 시선 속에 노출되었다. 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놀라 쿵덕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시선을 재빨리 돌렸다. 사진은 여자가 반쯤은 감은 눈과 헐벗었다 싶은 옷차림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새침한 여자와 도저히 한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극적인 포즈였다. 점입가경이었다. 너무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방금 저 남자가 지연에게 키스를 했다는 것이었다. 단지 여자를 떼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마자 지연은 들고 있던 쟁반을 남자의 머리통을 향해 집어 던졌다. “이 미친 자식!” 쨍그랑! 요란한 쇳소리가 긴장된 카페의 침묵을 흔들며 흩어진다. 남자의 머리통에 적중해야 할 쟁반은 바닥에 처참하게 패잔병처럼 팽개쳐졌다. 갑자기 튀어나온 짧은 머리칼의 남자가 빠른 몸짓으로 지연의 시야를 차단하고 당당히 서 있다. ……이건 뭐야? 숨이 헉헉 차올랐다. 움직임이 너무 빨라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보라색 머리칼의 남자 앞을 막아선 새로운 남자의 예상치 못한 등장에 지연은 정말 놀랐다. 지연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황망한 기분으로 지연은 훤칠한 두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기만 하였다. “아직도 볼일이 더 남았나? 연기 연습을 좀 더 해야겠어.” 비웃는 남자의 목소리가 바닥으로 떨어진 사진을 쳐다보고 있던 청순녀의 가슴에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여자가 창백한 얼굴로 부들부들 떨며 몸을 구부려 바닥에 떨어진 사진들을 주워 든다. 여자를 무시하는 남자의 태도는 지연을 분노하게 했다. 테이블 위에 놓았던 물 잔을 들어 그 못된 남자에게 끼얹었다. 미친개에는 그저 찬물이 약이었다. “인간 망종 같으니라고.” 그러나 이번에도 물은 보랏빛 머리의 남자에게는 닿지 않았다. 아까의 그 쟁반을 막아선 남자가 뿌린 물까지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 상황은 냉정한 남자의 주의를 청순녀에게서 지연에게로 돌리고 마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그쪽도 잠시나마 즐기지 않았던가?” 선글라스 뒤에 숨어 있어도 알 수 있었다. 흔들림 없이 직시해오는 남자의 시선을. 거만한 남자의 말투는 느릿하면서도 잔인하게 이죽거렸다. 지연은 약이 바짝 올랐다. 오냐! 그래, 너 잘났다. 지연의 눈빛 속에서 경멸의 빛이 일렁인다. 오기가 몽글몽글 샘솟아 올랐다. 마치 적을 만나 무찔러야 하는 필사의 명령을 수행하는 병사처럼 지연은 전의를 다졌다. “변태 놈들은 강제로 당하는 것도 즐기나 보지?” 순간 남자의 입매가 즐거운 듯이 말려 올라간다. 코웃음까지 치며 비웃은 지연의 등 뒤로 쭈뼛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곤두선다. 남자는 다시 지연의 어깨를 잡아 끌어당기더니 거침없이 입술을 덮쳤다. 마치 제 것인 양 익숙하게. 그리고 전혀 거리낌 없이 지연의 입 속으로 침입한 남자의 혀는 얄궂게도 자신의 영토를 선언하는 정복자마냥 거칠 것이 없다. 호흡의 리듬을 놓친 지연의 입 속을 자유자재로 농락하는 말캉거리는 혀 때문에 지연은 버둥거렸다. 호흡은 점점 한계에 다다랐다. ‘빨리 생각을 해, 한지연.’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처럼 약이 바짝 올랐다. 그리고 분했다. 말도 안 되는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 버둥거리던 지연은 자신의 입 안을 멋대로 휘젓고 있는 말캉한 이물질을 꾸욱 깨물어버렸다. “이런 젠장.” 남자가 거친 욕설과 함께 떨어지자마자 상기된 얼굴로 호흡을 급하게 몰아쉬던 지연은 남자를 향해 거센 기세로 손을 쳐들었다. 그러나 허공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나아가던 지연의 손은 남자의 얼굴에 미처 닿기도 전에 우악스런 손아귀에 팔목을 잡혀 애꿎은 허공만 난타했다. “놔! 이 변태 자식아.” 무엇에 더 화가 났는지 지연 자신도 몰랐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게 첫 키스를 뺏긴 것 때문인지, 여자를 우습게 여기는 남자의 행동 때문이었는지. 자신을 압도하는 분노로 인해 남자의 손에 잡힌 팔을 빼려 안간힘을 쓰며 버둥거렸지만, 팔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이 더해질 뿐 남자의 손에 잡힌 팔목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남자의 손아귀 힘은 대단했다. “이름이 뭐냐?” 남자는 지연의 안간힘을 아주 우습다는 듯이, 그리고 아주 즐겁다는 듯이 이죽거린다. 순간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차가운 눈동자에 잠시 불꽃이 지나갔다. “미친 자식!” 노려보는 지연의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오른다. “난 황이준이야.” 지연의 거친 욕설에도 상관없이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말한 남자는 한쪽 입가를 올리며 히죽 웃기까지 한다. 그 웃음에 등줄기를 타고 오싹 소름이 끼쳐왔다. 불안감. 그 정체는 불안감이었다. “너 같은 놈은 콩밥 좀 먹어야 해.” 이를 악문 채 지연이 경멸하듯 내뱉었다. “오늘 빚진 건 다음에 갚지. 조만간에.” 낮은 목소리로 말을 끝내자마자 남자는 갑작스럽게 지연의 손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그의 힘에 밀려 휘청거리는 지연 따위는 금세 관심에서 사라진 듯 냉정하게 등을 돌려서 문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다시 보이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그러니 다시는 나타나지 마.” 지연은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뒤통수를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나 지연의 목소리는 딸랑 울리는 종소리에 먹혀버렸다. 곧이어 단정한 남자도 종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빈 정적이 찾아왔다. 두 남자가 등장처럼 화려한 퇴장을 하고 나자 갑자기 연극이 끝나버린 무대처럼 어수선함과 어지럼만이 가게 안에 남았다. 지연은 불과 몇 분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수습하기 위해 아직도 자리에 멍한 채로 앉아 있는 여자에게로 돌렸다. “괜찮아요? 요즘은 별 이상한 사람들이 대낮에 활보를 하네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애써 무시한 채 지연은 사건의 당사자인 여자를 돌아보며 안쓰럽다는 듯 물었다. 그러나 여자는 지연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의지 깊숙이 쓰러져 있다시피 멍하니 앉아만 있다. 순간 여자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 떨어지자, 지연은 급하게 테이블 위에 놓인 티슈를 내밀었다. 그러나 지연의 그런 호의는 여자가 매몰차게 그 손을 내쳐버리면서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너도 조심해. 저 자식은 악마니까.” “예?” 갑자기 또 하나의 화살이 지연을 향해 날아왔다. 안간힘을 다해 자신을 추스른 여자는 손에 꼭 쥐고 있던 사진을 가방에 집어넣고 당당한 몸짓으로 일어나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지연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문에 화풀이라도 하듯 세차게 문을 미는 여자가 나가자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이제 여배우까지 퇴장인가? 그제야 귓속으로 들어오는 소곤거리는 아줌마들의 목소리에 지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지연은 화끈 달아오른 얼굴에 차가운 손을 갖다 대었다. 한낮의 작은 소극장 무대가 되었던 카페 안에는 이제 여배우까지 퇴장하고 엑스트라만 남았다. 지연은 흡사 태풍이 쓸고 간 자리처럼 어지럽게 널려진 자리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표정 관리를 하면서 테이블과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른함 따윈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쟁반을 힘겹게 주워 올렸다. 단지 엑스트라였다. 처음부터 출연 의사가 없었던 관객이었다가 얼결에 참석하게 된 작은 연극. 그러므로 관객들을 향해 마무리 인사를 할 필요조차 없었다. 지연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래야만 이 황당한 사건들이 정리가 될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자신한테 일어난 건지 이해가 되지도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미친개에게 물렸다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저 재수가 지독히도 없는 날 중에 하나라고. 그런 날이 처음인 것도 아니었으니까. 지연은 그렇게 위안했다. 그냥 평범한 날이었다. 그러나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아무 상관없는 지연은 첫 키스를 도난당했다. 억울하고 또 억울하기만 하였다. 한 푼어치의 재수도 없는 날. 운수 사나운 날이었다.

천하신탐

묵검향

특검

박봉성

이탈자

박봉성